가끔은 가래떡을 썰고 싶다

가끔은 가래떡을 썰고 싶다

 


고향을 떠나 일산에 살면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 은희. 은희네 집은 일산이었는데, 아버지는 일산 신도시 개발계획 발표 하루 전에 큰 집을 샀다. 신도시 지정지 바로 옆 행신동에. 며칠 동안 속상해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아들 따라 지방에서 살고 계신다. 살면서 늘 한 곳에서 살기는 어렵다. 입신출세하여 서울로 가고, 결혼하여 친정을 떠나기도 하고, 취업하면서 전근을 가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기쁨과 기대가 있었다. 문득 예전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은희는 요새 네이버 밴드에 재미를 붙였다. 초등학교 밴드에 들어오라 초대를 한다. 나는 초등학교 친구는 너밖에 기억이 안 난다고 해도 소용없다. 몇 마디 나눠 보면 다 생각이 난다고. 학교에 직접 가서 교정, 문방구 골목을 찍어 올리는 열성파 머스마도 있다고 한다. 그 시절이 그립다고 난리들이란다. 남자애들 전성 시기가 초등학교라서 그럴까? 그 시절이 슬그머니 그립게 떠오른다. 골목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들과 젊었던 어른들의 모습이.


구정에는 만두 빚기가 큰일이다. 만두피 반죽은 남자들의 몫이다. 곰표 밀가루 한 포를 뜯어 오래도록 치대어 만든 반죽을 넓은 교자상에 쭉쭉 늘인다. 얄팍해진 반죽을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떼어내, 만두소를 한가득 채우면 어른주먹만 한 만두가 된다. 명절 내내 만둣국만 먹고 있어도 좋았다. 만두는 이때만 먹을 수 있었고, 이때 먹어야만 맛이 있었다.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빼는 것도 장관이다. 물에 불린 쌀을 큰 소쿠리에 담아 방앗간에 가면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우리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맏딸인 내 몫이다. 우리 차례가 되면 둘째 딸이 달려가 엄마에게 가서 알린다. 쌀을 빻아 백설기로 찌고, 그것을 다시 뭉쳐서 가래떡을 만드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우리 떡이 나올 때까지 내내 지켜보며 기다렸다. 방앗간에는 따뜻하고 하얀 김이 한가득하다. 구멍에서 꾸물꾸물 끝없이 흘러나오는 가래떡을 규칙적으로 뚝뚝 끊어내는 아저씨의 손놀림이 멋있게 느껴졌다. 갓 빼 온 가래떡은 부드럽고 쫀득했다. 수고한 아이들은 가래떡을 길쭉하게 한 줄씩 들고 먹어도 된다.


가래떡을 서너 일 꾸둑꾸둑 말리면 떡국 떡을 만들 수 있다. 말랑해진 가래떡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써는 일이 명절 며칠 전 일이다. 여자들이 선수로 나선다. 작은 엄마, 시집 안 간 고모가 ‘탁탁탁’ 칼 소리를 내며 멋지게 떡을 썬다. 길쭉 동그랗고 말간 떡국 떡이 참 예뻤다. 넉넉하게 마련한 떡국 떡으로 구정뿐만 아니라 겨우내 떡국을 끓여 먹었다. 점차 식구가 줄어들었지만, 엄마는 떡쌀을 금방 줄이지는 않았다. 그사이 나는 일손을 도울 만큼 자랐고, 엄마처럼 예쁘게 떡을 썰고 싶어 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구정을 맞이하지 않는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수고는 줄고, 가족과 이야기 나누거나 함께 TV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생협 만두가 맛있기는 하지만 가끔은 쫄깃하고 두툼한 만두피가 먹고 싶어진다. 가끔은 가래떡을 썰고 싶다.


온 가족이 함께 만두를 빚고 떡을 썰며 명절을 준비한다면 좋겠다. 그 시간이 함께 이야기하며 정감을 나누는 시간인데. 생협만 믿고 일손을 거들지 않는 남편을 이번 구정에는 집으로 소환해 볼까?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안인숙 행복중심생협 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