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킨다’는 것
<질병의 역사> (F. 카트라이트, M. 디비스 공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역사가와 의사가 함께 쓴 책으로,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재미나게 기술하고 있다. 말라리아 등의 역병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천연두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백인들의 정복 사업이 순탄하게 되었다거나, 페스트가 근대 유럽에 미친 영향 등이 실려 있다. 거대한 인류사에 영향을 준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이야기에 다소 겸손해지기도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건 위생을 개선하려 노력했던 인류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질병의 사회학>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주된 느낌은 ‘시대 상황에 따라 지배적인 질병이 다르다’이기 때문이었을까? 인클로저 운동*으로 땅을 잃은 농민들이 몰려든 유럽의 도시에는 제대로 된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다. 도시는 똥과 오줌으로 가득차고, 주거 공간은 비좁았으며, 부실한 영양 상태는 페스트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태가 아닌가. 이때는 암으로 죽어갈 여유가 없었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되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이상(異常)세포 덩어리인 암으로 죽어 갈만큼 노화를 겪을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공중 위생이 좋아지고, 영양 상태도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균은 박멸하는 항생제가 많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과 다른 질병, 대량 생산·대량 소비 사회가 퍼트리는 질병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질병의 이름만 다를 뿐,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은 없다. 환경은 나를 구성하는 외부의 나라고 할 수 있다. 코와 피부를 통해 공기를, 목을 통해 물과 음식을, 그리고 온몸으로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흡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흡수하고 발산하고,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
나는, 환경호르몬·농약·식품첨가물·성장촉진제·GMO·방사성 물질로부터 나를 지키고자 한다. 나로 인해 또 이와 같은 것이 재생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화학계면활성제를 넣지 않은 비누와 세제를 사용하면 물을 아낄 수 있다. 물은 공공재니까 다같이 아껴 쓰자고 말하고 싶다. 면생리대는 사용하는 습관만 들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면생리대와 함께 재생 휴지는 여성이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여성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형광물질이나 표백제가 없는 것을 사용하고 싶다. 또한 면생리대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고마운 것이기도 하다. 요즘은 염색약을 사랑하게 되었다. 기존 염색약의 위험성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세 달에 한 번 정도 아들이 집에 올 때면 아들의 손을 빌어 염색을 한다.
거울을 보니 염색이 벗겨져 흰머리가 많이 보인다. 외출할 일도 많아졌는데 어쩌지. 염색은 누군가 해주는 맛으로 하는데. 아들아~ 아들아~ 불러도 대답이 없네. 여보~ 여보~ 냉큼 달려온다.
안인숙 행복중심생협 현합회 회장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19세기 유럽에서 개방경지나 공유지ㆍ황무지를 산울타리나 돌담으로 둘러놓고 사유지임을 명시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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