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컴퓨터

 

“윤수 아빠~! 컴퓨터 말야,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고 자꾸 메시지가 뜨네? 왜 그러지?”

 

밖에서 더위와 싸우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이런 전화는 전혀 반갑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급한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들려오는 목소리는 역시나 짜증 섞인 말투….

 

“그거, 공유기! 무선공유기 전원이 꺼져 있더만~!!”
“엉? 아~ 알았어, 알았어~ 미안~”

 

평소 지구와 환경에 관심이 많고 절약 정신이 나름 몸에 밴 나지만, 알면 아는 만큼 더 아낄 수 있다는 주위의 현명하신 생협 선배님들의 뜻을 받들어 전기절약 실천단에 가입하였다. ‘가정방문 에너지 컨설팅’을 받고 우리집 전기 사용량을 지금보다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남편의 눈치가 보여 빼놓지 못하고 있던 무선공유기와 컴퓨터의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일이었다.

 

투잡(two job)족인 남편은 새벽에 집에 들어와 아침에 나갈 때가 많다. 새벽에 들어와서도 가끔 컴퓨터로 일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래서 다른 대기전력은 다 차단해도 남편이 언제 들어와 쓸지 모르는 인터넷 공유기와 컴퓨터 전원은 웬만하면 꽂아둔 채 그대로 두고 살았다. 그래도 생각날 때 한 번씩 전원을 껐었는데 남편은 그걸 감지한 모양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가슴이 뜨끔했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에게 집에서까지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리하여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난 절대 공유기는 물론 컴퓨터 전원 콘센트를 건드린 적이 없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낮에 잠깐 컴퓨터를 쓰려 할 때마다 바로 켜져야 하는 모니터 화면이 깜깜~한 것이다. 그러고선 살펴보면 십중팔구 콘센트에 전원코드가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처음 한두 번은 내가 빼놓았었나 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세 번째 네 번째가 되니 그게 아닌 것을 알았다. 이건 분명 남편, 그 사람이 해놓은 게 틀림이 없다. 집에 오면 피곤하여 쓰러져 잠들기 바쁜… 무반응 무관심 귀차니즘 아저씨! 그 사람이 웬일이지? 그것도 번번이! 그러고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보일러의 온수버튼도 종종 꺼놓는 센스까지!!
말없이 묵묵히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뜨아!

 

그럼 그렇지! 집사람이 하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매월 관리비 청구서를 보면서 같은 평수의 전기 사용량에 비해 반의 반 정도밖에 쓰지 않는 우리집 내역에 뭔가 느끼는 게 있었겠지. 자신은 밖에서 가정을 위해 피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아내는 그 피땀으로 마련한 살림을 지혜롭게 꾸려나가는 이 훈훈한 모습에 기분 좋지 않을 가장이 있을까.

 

지금 와서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절약을 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수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난 그냥, 지구를 사랑하고 환경을 깨끗하게 보전하는 게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껏 숨 쉬고 뒹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줘야 하기에….

 

물론 남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이런 엄마의 삶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그리 살아가는 거,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도 환경을 사랑하는 올바른 마음씨를 전해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또 없겠다. 무관심하던 우리 남편이 묵묵히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아름다운 실천을 격려하는 이끔이 분들과 다른 조합원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한 글을 끼적여 본다.

 

 

이영신 행복중심서울동북생협 조합원

 

 

‘에너지 절약 체험수기 공모전’ 자린고비상 수상작
핵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합원과 에너지 절약 활동을 펼치고 있는 행복중심생협은 8월 22일 ‘에너지의 날’을 맞이하여 ‘에너지 절약 체험수기 공모전’을 실시했습니다. 수상작 중 일부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