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은 생산자와 조합원의 마음과 마음이 담기는 그릇"

"행복중심생협은 지혜로운 조합원과 철학이 있는 생산자의

마음과 마음이 담기는 그릇"



박영숙 생산자가 채소를 기르는 하우스에서. 박영숙 생산자는 마을의 7농가와 함께 채소 꾸러미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 친환경 유기농업에 대한 근거 없는 말이 떠도록 있다. 친환경 농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실제로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있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급식에서 친환경 농산물 대신 GAP(우수농산물관리제도) 농산물을 권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서울시 교육청은 학부모 대상 학교급식연수에서 '농약은 과학'이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래서 궁금했다. '유기농'이란느 말조차 생소했던 25년 전, '선배' 조합원들은 어떤 생각으로 친환경 유기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시작했을까. 3월 6일 조합원 활동가에서 이제는 생산자로 변신한 박영숙 전 이사장을 만나러 충남 청양으로 향했다. 


부엌에서 세계가 보인다

박영숙 생산자는 둘째를 키우던 지난 90년, 선배들의 '전공을 살려 설문조사 분석을 도와달라'는 요청에 행복중심생협(당시 여성민우회생협)을 찾았다. '잠깐 도와야지'하며 시작된 인연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조합원 대표인 이사장까지 맡았다. '잠깐'으로 시작해 20년 세월을 보냈다니 원래 생협을 할 운명이었다 보다. 

처음에는 많은 조합원이 그렇듯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컸다. 그러다 생협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생협 운동의 비전을 확인했다고 한다. 우리는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먹는 것은 생존의 기본이고, 건강을 지키는 핵심이며, 삶의 큰 즐거움이다. 그만큼 내가 먹는 음식을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식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우리 사회 전체 시스템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먹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엌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품었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박영숙 생산자 집. 

뒷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  


'콩나물을 시집보낸다'는 생산자의 살뜰한 마음

행복중심생협은 창립선언문에서 '무농약 생산 영역을 확대해 땅을 살리고, 농약 등에 범벅이 된 수입 농산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자기 사명을 분명히 했다. 생산량 증가만이 국가 농업정책의 최고 목표였던 시절,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이 당연하던 때였다. 당시 현실에서 보면 무농약 생산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다짐은 말 그대로 꿈같은 다짐이었다. 그래도 동네에서 '미친놈' 소리 들으며 친환경 유기농업을 시도하는 농민들이 있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 씨 뿌리고, 풀 매고, 수확하는 과정을 살폈다. 채소를 생산하는 여성농민들에게 자매애를 느꼈다. '생협에 올려보낼 때면, 콩나물을 시집보내는 것만 같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나 애지중지 길렀으면 딸 시집보내는 마음마저 들까. 그래, 이런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신뢰가 생겼다. 그렇게 91년부터 지금은 '유기농 메카'로 불리는 충남 홍성 생산자들과 인연을 시작했다.


농민이 밭을 갈아엎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생협 초기에는 생산자들에게 참 미안한 일이 많았다고 했다. 친환경 농산물 공동구입사업을 시작했지만, 조합원 수가 많지 않아 1명의 생산자가 생산한 채소도 모두 다 이용하지 못할 경우가 많았다. 농사는 시기를 잘 맞추는 일이 중요한데 한창 수확해야 할 때와 조합원 홍보까지 시간 차이로 이미 웃자라거나, 병충해 피해를 보아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밭을 갈아엎는 일이 참 많았단다. 박영숙 생산자는 말한다. '농민이 밭을 갈아엎는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래도 우리 생산자들은 농약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되풀이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조합원들도 결품이라는 불편을 인내해주면서 생산자들과 생협을 응원했다. 


식품안전은 조합원과 생산자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지난 97년 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되었다. '통일벼'로 상징되는 70년대식 증산 패러다임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을 향한 작은 계기였다. 박영숙 생산자는 친환경 관련 국가인증제도가 친환경 유기농업의 확산에 이바지한 측면은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계도 존재한다고 평가한다. 생협 초창기부터 함께 한 생산자들, 그리고 생산자를 응원해 온 조합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친환경 인증제도를 제도화시킬 수 있었는데, '인증'이라는 형식에만 너무 얽매인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생산자와 조합원이 추구해 온 친환경 유기농업의 가치까지는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박영숙 생산자는 '안전한 식품'은 친환경 인증을 통과하고, 검사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증과 검사는 '안전하다'는 '결과'만을 확인하는 반쪽짜리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상품이라는 '결과물'만 바라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까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는 주문이다. 



쌈채소는 싹을 틔운 후 땅에 옮겨 심는다 

마당에 가지런히 놓인 농기구. 



철학이 있는 생산자와 지혜로운 조합원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소비자들이 주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을 이용하자는 것이 행복중심생협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25년 동안 조합원과 소비자가 서로 이해하고 협동이라는 에너지로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모두 지속가능이라는 친환경 유기농업의 가치를 묵묵히 실천해 온 생산자, 생산자의 철하겡 감동하고 '생활재 이용'으로 응원해 온 조합원들이 신뢰를 쌓아 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정직하게 생산하겠다는 자기 삶의 방향과 철학이 있는 생한자. 먹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살피며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지혜로운 조합원. 행복중심생협은 생산자와 조합원의 마음과 마음을 담아 왔던 그릇이다. 이제 그 그릇을 키워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담자. 생협 운동은 내 일상과 주변을 변화시켜 가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행복하게 ㅁ나들어가는 우직한 걸음이니까.


들깨송이 부각을 아시나요?

이날 박영숙 생산자는 직접 기른 채소로 푸짐한 점심 밥상을 챙겨 주었다. 익숙한 나물 반찬 사이로 생전 처음 보는 반찬이 하나 있었다. “이게 뭔지 알아요? 이게 들깨송이 부각이라는 건데, 아마 처음 봤을 거예요. 행복중심생협 초창기에는 이런 들깨송이를 공급했어요. 근데 사람들이 어떻게 먹는 건지 몰라서 물에 불려 나물처럼 먹었다는 사람도 있고, 그냥 무쳐 먹었다는 사람도 있었지요.” 들깨송이로 만든 부각은 처음이라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다. 이게 무슨 맛일까 싶었는데, 웬걸. 입안 가득 들깨의 고소한 향이 퍼지면서 바삭바삭한 줄기가 씹는 재미까지 더한다. 들깨송이는 들깨꽃이 만개한 후, 들깨가 터져나오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그래야 이렇게 맛있는 부각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직접 농사를 짓는 곳이 아니면 구경하기 어렵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들깨송이를, 그것도 초창기 조합원에게 공급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정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