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6] 너와 내가 함께, 즐겁고 자연스럽게 - 김정현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는 협동조합과 청춘의 교집합에 서 있는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이다. 혹독한 취업난과 스펙 쌓기 사이에서 허덕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그들은 왜 협동조합을 선택했을까? 무엇이 어렵고 힘든지, 무엇이 즐겁고 보람이 되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남이 만든 시스템 속 하나의 부품이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학점과 자격증을 따고, 지금 여기의 즐거움과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포기한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김정현씨는 신(新)인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가 지금껏 만난 청년들 중 협동조합과 자신의 삶을 가장 자연스럽게 포갠 사람이었던 김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6] 너와 내가 함께, 즐겁고 자연스럽게- 김정현



  기자는 김정현(24)씨를 ‘청년’과 ‘협동조합’을 키워드로 웹을 검색하던 중에 찾아냈다. 2012년에 김씨는 생산자협동조합 ‘감좋은’에서 일하고, 워커즈콜렉티브 활동을 통해 친환경 비누를 만들고 제작 워크숍을 열었다. 사회적기업 혁신모델 탐방단 SEEKER:S(사단법인 씨즈)는 그의 문제의식을 소개하면서 ‘지역에서 청년이, 소규모 협동조합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그에 대해 김씨가 어떤 답을 찾았을지가 정말로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만난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온 대로 움직여 가고 있는 청년이었고, 그 움직임의 지향점은 ‘먹고사니즘’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나는 재미있게 살고 싶다. 팍팍하지 않은,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내 나름의 시간을 가지는 여유가 있는 삶, 친구들끼리 잔치를 기획해서 놀고, 노래나 만화 같은 컨텐츠, 맛있는 것을 함께 만들고 나누는 삶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다. 내 삶은 생존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계속 성장해 나가는 삶이면 좋겠다.”




(사진) 김정현(24)



  귀농한 부모와 함께 살던 김씨는 작년에 홀로 상경해, 옷과 소품을 만드는 협동조합 감좋은에서 한 해 동안 일했다.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라, 작은 일공동체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움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언젠가 자신 역시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어 일하게 될 것 같았기에 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협동조합인 감좋은을 알게 되었을 때 곧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미싱 마련에서부터 시장 상인과 안면 트기, 프리마켓에서 제품을 팔고 생산자로서 생협과 협의하는 일, 심지어 제품 포장에 색깔과 크기를 표시하는 스티커를 붙이는 일까지 하나씩 배우며 일할 수 있었다. 김씨는 특기를 살려 감좋은 홍보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모든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림)감좋은 홍보 만화 ⓒ김정현


  “누군가와 고용-피고용의 상하관계를 맺을 것이 아니라면 협동조합은 함께 일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형태가 아닐까?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기획해서 실행하면 ‘내 일’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보람차고,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내 일’이 재미있고, 내가 주체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이 좋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스스로 일해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좋은과 같은 소규모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자 김씨는 “‘화이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웃었지만, 어떻게든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또래 청년들과는 전혀 다르다.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더 많은 또래들과 함께 활동하고 싶으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중요한 것은 가치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매체이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를 보다 보면 그 내용을 자꾸 생각하고 동경하고 따라하게 되기 않나. 드라마나 연예인의 영향력이 큰 이유다. 반면 생태라든가, 자본주의가 아닌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가치관을 거기에 두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어떡하면 좋을까?'라고 생각하고, 방법을 찾고,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을 알게 되고, 계속해서 자기 가치관에 반하지 않는 일들을 찾아 가는 것 같다.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잡아 계속 함께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함께 하는 사람 그리고 함께 하는 일이 재밌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이제 생협 외에도 자립음악생산조합이나 협동조합 카페처럼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생기고 있으니 각자 자기 자리를 찾으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매력 있는, 같이 ‘놀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나아가 우리의 미디어를 구축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사는 삶에 대한 만화를 그리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TV속 재벌 2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 소소하고 구질구질하지만 재미있는 일, ‘지금 여기’를 조명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말이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현, 감좋은협동조합 남은선, 김양순(위), 길경미(아래), 감좋은협동조합 운영위원회 박숙희, 김연순



  그는 “‘톱니바퀴’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협동조합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사람이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구가 아니라, 인격체가 되어 만나려는 노력이다. 예를 들면 생협에서 만드는 관계가 그렇다. 누가 만든 것인지 알고 먹는 일, 누가 먹는지 알고 만드는 일 말이다.”


  처음 한 해를 계획했던 서울에서의 독립 생활이 이제 두 해째로 접어들었다. 김씨는 나중에 다시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도시도 아니고 부모님이 택했던 동네도 아닌, 자신이 반한 땅덩어리로 ‘자신의 귀촌’을 하고 싶다는 것.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면 소규모 협업 형태의 일공동체를 꾸려 먹고 살 수 있을 것이고, 훗날 그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택할 것이다. 김씨는 올 한 해 동안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이십대 청년 혹은 그 바로 윗세대가 꾸려 가는 지역으로 동네여행을 많이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 갓 이십대 중반이 된 이 청년은 나이가 든 만큼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많이 늘어난 느낌이 든든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