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는 협동조합과 청춘의 교집합에 서 있는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이다. 혹독한 취업난과 스펙 쌓기 사이에서 허덕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그들은 왜 협동조합을 선택했을까? 무엇이 어렵고 힘든지, 무엇이 즐겁고 보람이 되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다섯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청년주거임대협동조합을 준비하는 권지웅씨. 자신의 삶 속에서 직접 겪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협동조합을 택했다. 처음엔 대학 내 학생 운동의 하나로 시작했지만, 이 당찬 청년과 친구들은 이제 학교 밖으로 나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바로 내 곁 친구들의 문제이기에 난관에 부딪쳐도 이겨낼 힘을 내고, 동시에 자신의 문제이기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숱한 난관에 부딪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5]
청년의 문제, 청년의 손으로 해결하는 방법 - 청년주거임대협동조합 권지웅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았다. 연세대 맞은편 경의선 아래 굴다리가 학교 정문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했던 스무 살 청년은, 자신이 앞으로 여섯 해 동안 아홉 번 이삿짐을 싸고 풀게 될 줄은, 생활비(집세)를 줄이기 위한 노력과 사람답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구 사이에서 답 안 나오는 줄다리기를 계속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이사 다녔다. 친구랑 자취도 해봤고 잠만 자는 방에서도 지내 봤다. 한동안 친구 집과 후배 집에 얹혀서도 살았다. 어떻든 살 만한 방 한 칸을 위해서는 한 달 50만원이 고스란히 들어가야 한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나니, ‘부산에서 태어난 게 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도 너무했다.”
(사진) 권지웅(25) 민달팽이유니온/청년주거임대협동조합 추진사업단
이 청년, 권지웅(연세대 4학년∙25)씨는 현재 민달팽이유니온 산하 청년주거임대협동조합 추진사업단을 총괄하고 있다.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인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과 집세에 허덕이는 자신들을 집 없는 달팽이인 민달팽이에 빗대 이름을 붙였다. 권씨는 대학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지나치게 비싼 집세를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게 되었고, 민달팽이유니온 친구들과 함께 해결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청년 주거 문제에 햇수로 4년째 매달리고 있는 지금, 주거임대협동조합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어떻게? 권씨는 먼저 기숙사의 예를 들었다.
지방에서 상경해 기숙사에 들어간 학생들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가량의 시간을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지만, 그 기간 동안 그들은 철저히 고객일 뿐이다. 거주민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충분히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운영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지낸다. 돈을 내고 남의 것을 빌려 쓰는 고객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기숙사에 대한 애정이 생길 리 없고, 이런 상황에서 시설은 함부로 다뤄지고 비품은 낭비된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들은 다시 고객들이 낼 기숙사비에 더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청년주거임대협동조합의 사업 계획 두 가지 중 하나인 관리운영협동조합형 기숙사 만들기 프로젝트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각 지역과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를 협동조합으로 만들고, 그 관리를 그곳에 사는 학생들이 맡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기숙사에 대한 권한을 주고, 운영의 여러 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하고, 그 운영 과정의 시행착오도 겪게 함으로써, 오히려 불필요하게 낭비되던 각종 비용이 절감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기숙사에 살게 되는 동시에 임대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비슷한 예로, 공공임대주택 제도를 생각해 보라. 시행된 지 20년, 지금 임대아파트와 그 주변 지역의 슬럼화가 굉장히 큰 문제가 되었다. 주민들의 활동력 자체가 떨어지고 건물 등 물적 재산의 훼손도 빠르다. 자기 것이 아니니 아끼고 가꿀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집에 대한 소유권을 주고, 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즉 주거 문제를 협동조합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사는 사람들을 주인으로’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집을 투기의 수단이 아니라 사는 곳으로 만들고, 함께 사는 집을 스스로 그리고 함께 민주적으로 운영해 나가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주거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 본다.“
이와 함께 권씨는 협동조합의 민주적 의사결정체계에서 나오는 상호 신뢰 관계 역시 이러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모든 과정이 합리적으로 운영되며 그 과정에 자신이 직접 참여할 수 있고, 모두의 목소리가 각각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확신하는 데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겨난다는 것. 조합원 사이의 단단한 신뢰는 성공하는 협동조합의 필수 조건이며, 함께 사는 집을 협동조합으로 꾸리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출자금을 통해 초기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권씨가 협동조합을 택한 두 번째 이유다. 손댈 수 없을 만큼 비싼 우리나라 수도권의 땅값과 임대료를 출자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종자돈인, 조립식 집을 지을 건축 비용은 어느 정도 댈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형 기숙사 만들기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 사업이자 주택 공급 모델을 적용하는 ‘민달팽이 마을’ 조성을 위해, 민달팽이유니온은 서울시에게 ‘땅만’ 빌려 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그렇다면 민달팽이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 지난달 시청에서 열린 <청년연석회의 : 청년, 서울을 만들다> 발표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 권지웅(왼쪽 첫번째)씨는 이날
서울시에 민달팽이 마을을 정책적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단비뉴스 단비TV(http://www.danbinews.com)
민달팽이 마을은 임대주택협동조합에 의해 운영되는 수십 채의 모듈형 하우스를 공간적 기반으로 삼는다. 마을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모두 조합원이다. 이 조립식 집에서는 아홉 명의 청년들이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되어, 각자 자신의 방과 화장실을 가지고 부엌과 세탁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와 함께 아홉 개 방의 가운데에는 공동체 생활을 가능하게 할 '공동 마당'이 만들어진다. 아홉 명이 모은 의견에 따라 공동 마당은 진짜 마당이 될 수도 있고, 서재나 체력단련실이 될 수도 있다. 공동 마당에 애완견을 키우고 함께 돌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권씨는 임대주택협동조합에 참여함으로써 단지 저렴한 집에 살 기회를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현재 권씨 등은 올 8월 협동조합 설립을 목표로 사업 계획을 다듬고 있다. 이를 위해 실수요자가 될 서대문구와 마포구의 청년을 대상으로 사업의 타당성을 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계획 중이다.
“이런 주택이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된다면 정말 입주할 의향이 있는지를 보통의 청년들에게 물을 것이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관리비와 집세의 거품을 없애는 대신 당번을 정해 건물을 청소하게 하는 식으로, 집 주인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함께 의무를 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찮은 일, 선택하고 싶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많은 청년들에게 주택협동조합이 익숙하지 않을 테니, 어느 정도의 반응이 나올 지 알아보려 한다.
민달팽이 마을의 계획대로 '우리가 살 집을 우리가 만들어' 공급하면, 건설사 중개인 투자자 등에게 갈 돈을 모두 집을 짓는 데에만 쓸 수 있다. 집값이 너무 비싼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평생 살며 모은 돈을 집을 마련하는 데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못 하고 아이도 못 낳는 삼포 세대가 된 것도 결국 비싼 집값 때문이 아닌가.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몇천만, 억씩 되는 그 돈을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주택협동조합을 통해 집에 들이는 돈을 줄이는 만큼, 우리 각자가 꿈을 이루고 보다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권씨는 협동조합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해낼 거라고 확신한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은 낯선 삶의 방식이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협동조합이 널리 퍼져 사회적 경제 영역을 확대시켜 가리라는 믿음도 있다. 인간이 경제 활동을 할 때 자신의 이익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이기적인 마음과 함께, 조금씩 내 것을 내어 서로를 도우려는 상호 호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권씨는 믿는다.
* 청년주거임대협동조합의 사업 계획은 지난 1월 <2012 서울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시민 참여로 이뤄진 1차 심사를 통과했고, 지금은 그 다음 단계로 아이디어에 대한 크라우드펀딩을 받는 '여럿이 함께하는 펀딩 42' 중 하나로 참여하고 있다. 권씨는 홍보에 들일 여력이 없다 보니 펀딩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인터뷰 중 점심 시간이 되어 샌드위치라도 대접하겠다는 기자에게 권씨는 샌드위치 사는 셈 치고 그만큼 펀딩을 도와달라고 했다.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여덟 명은 권씨를 비롯해 현재 모두 대학생이고, 급여도 한 푼 없다. 밥은 굶어도 좀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집이 있는 '달팽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이 청년들을, 2013년 3월 8일까지 굿펀딩에서 지지, 후원할 수 있다. http://bit.ly/WrbJ9B
(사진)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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