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그 후 1년

수능, 그 후 1년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일이 가물가물 기억이 난다. 거꾸로.

수능 후 330일
대학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기간. 식량이 떨어져 간다고, 맛난 거 보내 달라고 전화가 온다. 지방에서 자취하며 공부하려니 힘들겠지만! 엄마의 감시를 피해 아들이 누린 자유는 달콤했을 것이다. 소소한 것 하나하나 혼자서 결정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경험이 나쁘지 않다. 아이에게 자존감을 높여 주고, 성장하게 하는 이런 환경을 더 많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수능 후 220일
여름방학에 집으로 귀환. 두 번의 놀람. 첫 번째, 인디언처럼 머리를 기르고 나타난 아들. 큰머리 얼굴이 작아 보이기도 하고 나쁘지 않지만, 꼭 그러고 싶냐? 고등학교 때 두발 제한에 한 맺힌 사람처럼.
두 번째, F학점을 받았다고? 어떻게 하면 F학점을 받는 거냐고 놀리기도 하고 타박도 했지만, 분명히 열심히 공부했을 거라고 믿기로 한다. 물론 놀기를 더 열심히 했겠지만, 내신 성적을 관리하기 위해 통 크게 놀아 보지 못한 시절에 대한 소박한 저항이라고나 할까. 1학년 때 누가 공부하느냐는 이웃의 말에, 이번엔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늦게 배운 바람이 크게 난다는데, 뒤늦은 사춘기를 불러오는 교육 환경이 있다. 어릴 때에 충분히 놀고, 커서는 학업에 뜻을 세울 수 있는 교육 제도가 절실하다.

수능 후 50일
대전 OO대학에 입학.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며 부지런히 세뇌를 한 덕분에 3년 동안 과외비는 한 푼도 안 들었다. 과외비를 좀 썼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입학한 학교는 달라졌겠지. 하지만 자신의 적성을 개발하고 삶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자신과의 고독한 대화를 통해 찾아야 하는 그의 몫이다. 아들, 파이팅!

수능 후 30일
수능 성적이 나왔으니 원서를 써야 한다. 와, 대학마다 뭐 이렇게 선발 기준이 다양해? 수능에 모든 걸 걸면 안 된다고, 내신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건만. 고등학교 3년 동안 일관되게 진로 관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3,000개나 된다는 입학 전형을 분석하는 것은 일반적인 학부모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엄마의 탁월한 정보력으로 3년 동안 자식을 잘 관리해서 좋은 대학 보내라고 하는 것은 교육부가 시민에게 요구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고 3엄마들이 데모를 안 할까? 답답한 마음에 입시 자료를 뒤적여 보는데, 아들은 성적에 맞춰 이것도 저것도 다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한다. 아들아 너 엄청 개성 있거든! 그렇게 다 맞지 않아. 하지만, 대학 공부가 다수의 교양과 약간의 전문 지식을 쌓는 곳이니, 뭐 맞지 않을 것도 없어 보인다.

수능 1일 전
내일이 수능인데, 음, 엄마로서 해 줄 것은 도시락 준비. 수능 날, 밥 잘못 먹어 시험 망치면 안 되지. 위장이 놀라지 않게 하려면 평소 즐겨 먹던 삼겹살을 구워 줄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들아, 왜 그렇게 도시락 반찬 뭐 싸줄 거냐고 신경을 쓰냐. 너는 요약노트 보고, 마인드 컨트롤도 해야 되는 거 아니니? 소풍 가냐? 철없는 아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우리나라는 대학입학 선발 경쟁에 몸살을 앓을까. 그냥 공부하겠다는 아이들 다 입학시키고, 졸업은 공부한 놈만 시키면 안 될까? 그러려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줄어야 한다. 학벌보다 능력, 스펙보다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는데, 불평등한 임금 문제가 교육 문제를 낳고, 교육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나고 보니, 아들과 엄마 아빠가 노력해서 어찌어찌 대학도 가고, 아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지만, 대학 입시가 끝나면 모든 것을 잊어 버리는 나 같은 엄마 말고, 1년 내내 고3 엄마의 마음으로 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는 엄마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엄마들이 모일 공간은 생협에서 제공할 텐데.

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안인숙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