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4] 즐겁게 일하고 똑똑하게 디자인하기 - 파절이협동조합 나혜란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는 협동조합에서 일하는/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이다. 혹독한 취업난과 스펙 쌓기 사이에서 허덕이는 수많은 청춘들 사이에서 그들은 왜 협동조합을 선택했을까? 무엇이 어렵고 힘든지, 무엇이 즐겁고 보람이 되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도시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아마 파릇한젊은이(파절이)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서울 복판에서 텃밭을 일구고, 유기농 퇴비를 만든다며 오줌을 모으고 지렁이를 키운다. 채소를 납품하러 갈 때는 흙투성이 지친 몸으로 굳이 자전거를 타느라 고생이다. 이 모든 과정을 너무나 즐겁게 해내던 파절이는 작년 말부터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지난 1월 말 창립총회를 열고 어엿한 협동조합이 되었다. 소식을 듣고 가장 궁금했던 것은 파절이가 협동조합이 된 이유였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파절이에게 협동조합이란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 같았다.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4] 즐겁게 일하고 똑똑하게 디자인하기-파절이협동조합 나혜란


  파릇한젊은이, 줄여서 파절이. 도시텃밭에서 젊은이의 손으로 채소를 길러 자전거에 싣고 유기농 카페와 레스토랑에 판매한다. 농사는 예술이고, 고된 농사에 진짜 파절이처럼 지쳐도 그 ‘예술’ 하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청년들이 모인 지 이제 일 년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도시에서 농사짓는 젊은이들’로 주목받아 온 파절이는 이제 파릇한젊은이 협동조합(이하 파절이 협동조합)이 되어 한 번 더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파절이는 왜 파절이 협동조합이 되었을까? 앞으로는 무엇을 해 나갈까? 그 고민과 계획에 대한 궁금함을 가지고, 파절이 협동조합 대표 나혜란(27)씨를 만났다.


- 왜 협동조합이 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


  “원래 파절이는 어떤 형태를 지향하며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서 납품을 하다 보니, 약속한 작물와 종류와 양을 확보해야 하는 책임이 생겼다. 약속을 지키려면 업무 분담이 되어야 하고,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그러다 문득 ‘어, 재미로 시작한 거였는데 사실은 재미없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재미는 달라지는 것이고, 지금은 거래라는 미션을 수행해가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있다면/없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뭐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동시에, 행정적∙법적 보호나 파절이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해서 파절이에게 어떤 형태가 필요하다는 내부의 요구가 생겨났다.

  동시에 파절이 활동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외부의 누군가와 이해관계를 맺어야 할 때 우리가 무엇으로 정의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옥상텃밭을 만들고 싶은데 파절이 혼자 하기엔 어려워서 정부나 기업과 협업을 논의한다고 하면, 상대방은 바로 “너흰 누구냐”고 물을 것이다. 파절이를 설명할 틀이 필요했다.

  이렇게 파절이 내부와 외부에서 공식적인 형태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파절이는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협동조합을 택했다. 구성원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서로를 존중해 운영된다는 점에서 비영리단체나 기업보다는 협동조합이 파절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진) 나혜란(27) 파릇한젊은이협동조합 



- 파절이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의 미션 아래 모였다고 해도, 사람들은 서로 다 달라서 각자 바라보는 목적지도 다르고 출발지점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호흡을 맞춰야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뒤처질 때 무조건 기다릴 수만도 없다. 그래서 늘 ‘반 발짝씩’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대와 역량이 한 걸음 차이가 날 때, 역량을 반 발짝 끌어올리고 기대를 반 발짝 끌어내려, 함께 반 발짝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씨는 협동조합과 일반 기업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대표가 목표를 세우면 직원들은 군말 없이 따르고 필요한 서포트를 어떻게든 해낸다.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파절이엔 목표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돈이 아니라 재미를, 그리고 재미와 가치를 함께 찾으며 ‘함께 반 발짝’ 나가는 파절이 멤버들은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이루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 같다. 그런 동시에 나씨는 협동조합이 된 파절이가 사업체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것 역시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협동조합은 가치 지향적이되, 절대로 기업다워야 한다. 조합원들은 물론 그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어야 하지만, 협동조합 자신이 그 가치를 억지로 주입하거나 스토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적 미션보다 비즈니스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에게 ‘왜 조합원이 되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더 쉽게, 특히 시각적으로 즐겁고 재미있게 움직여야 한다. 지나친 의미 부여에 허덕이지 않고 가벼운 언어로도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디자인이고, 접근은 비즈니스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사업체로서도 성공할 것. 나씨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더 똑똑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담담히 풀어놓는 파절이의 비전 속에 그만큼 단단한 각오가 엿보였다.


  “파절이 협동조합을 통해 도시를 녹색으로 치유해 나갈 것이다. 크게 두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도시농업을 통해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로컬푸드 실천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캠페인화해서 로컬푸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넓혀갈 것이다. 함께 진행할 두 번째 움직임은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텃밭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재건되도록 하는 것이다. 텃밭이 늘어나면 그에 따라 커뮤니티도 늘어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도시 농사, 도시 녹화, 도시 커뮤니티 재생, 로컬푸드, 얼굴 아는 거래. 이것이 파절이가 추구하는 것들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나 스스로를 취업을 위한 경쟁 속에 몰아넣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경쟁을 거쳐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 온종일 온 신경을 쓰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런 고민 속에서 그때까지 익숙했던 것과는 다른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 혼자가 아니라 같이 가는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끝없이 경쟁하며 외로워지는 대신 ‘같이 즐겁게’ 일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협동조합 모델이다. 파절이 협동조합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