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2] 더 작게, 더 친밀하게 - 씨앗들협동조합 이환희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는 협동조합에서 일하는/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이다. 혹독한 취업난과 스펙 쌓기 사이에서 허덕이는 수많은 청춘들 사이에서 그들은 왜 협동조합을 선택했을까? 무엇이 어렵고 힘든지, 무엇이 즐겁고 보람이 되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일단은 씨앗들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팔색조 같은 청년 이환희씨다. 자취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장 보러 한살림 매장에 가고, 우유 달걀 버터가 들지 않은 빵을 구워 친구들에게 대접한다. 최근엔 녹색당 당명 되찾기 시위를 하다 매스컴에도 수차례 오르내린 이 청년에게 협동조합이란 무엇인지, 궁금했다.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2] 더 작게, 더 친밀하게 - 씨앗들협동조합 이환희


  이환희(28)씨는 기자가 아는 이십대 중 누구보다 생협을 많이 이용하고, 생태적인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실천의 깊이가 깊은 사람이다. 그런데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지 묻자 곧장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이타성과 조화시키고 싶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참고로 이씨의 직함이라 부를 만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적극적인’ 녹색당 당원, 씨앗들협동조합 발기인, 탈핵학교 탈핵전문가양성과정 수강 중. (그리고 윤종신 팬클럽 ‘공존’의 총무!)


  “상주에서 생협에 장 보러 가면, 젊은 청년이 양파 감자 같은 것을 사 가니까 신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셨다. 백이면 백 ‘혹시 식품영양학과 학생이에요?’ 물어보시더라. 그러면 ‘그건 아니고, 비슷한 전공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럼 전공이 뭔데요? 역사 전공했습니다. 아니 그게 뭐가 비슷한 전공이에요? 그야, 공부하다 보니 옛날부터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다들 웃지만,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은 아니다.”




(사진) 이환희(28) 씨앗들협동조합


  이씨는 비건채식을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경북 상주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스스로 밥 한 번 해본 적 없던 이씨는 대학 진학과 동시에 홀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무 살, 그야말로 ‘막 먹었다’. 도미노피자와 맥도날드의 단골로 지내며 잦은 음주와 밤낮 바뀐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육칠 년이 지나자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단식원에 들어갔다. 고기를 끊고 기본 조리법 외엔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한 음식을 먹었다. 자연의 리듬에 가까운 생활을 실천하자 몸이 몰라보게 나아졌다. 이후 본가에서 한 해 지내며 텃밭을 가꾸고 요리를 배웠다. 직접 기르거나 만들지 못하는 것은 생협에서 구입했다. 작년 말부터 다시 서울에서 생활하게 된 후에는 집에서 보내온 것과 생협에서 구입한 식료품으로 직접 요리해 먹는다.

  텃밭을 돌보며 처음으로 몸을 쓰는 삶의 기쁨을 알았다. 고개를 들면 하늘에 독수리가 날고 있고, 저 멀리 고라니와 오소리가 보이는 자연 속에서 똥도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아직은 잘 안 되지만). 이씨에게 단식원을 나온 뒤에도 채식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 보았다.


  “종교적 신념을 제외하면 채식을 택하는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환경이나 도덕 등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의식, 즉 공장식 축산의 폐해, 동물권이 완전히 무시되는 축산 방식과 그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 때문에 채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완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고기가 몸에 나쁘기 때문에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 두 가지 모두가 채식의 이유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고기가 사람 몸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다.

  이기적인 이유이지만, 이런 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채식을 한다 해도 사람인 이상 가끔 고기를 먹고 싶어질 때가 있고, 고기를 먹게 되는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사회적 문제의식 때문에 채식을 하고 있다면 마음이 무척 괴로울 수 있다. 그게 반복되면 오히려 채식 자체를 포기하기 쉽다. 스스로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요구하다가 어느 순간 지쳐버리는 것이다.

  반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고기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훨씬 쉽다. 지속성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도덕적 우월의식 같은 것도 없다.“


  생협을 이용하는 것 역시 유기농업을 지속, 확대되도록 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라는 의식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걸 생태보신주의라고 부른다며 웃었지만, 생협 조합원으로서 지금 한국의 생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날카로운 답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생협들은 이미 지나치게 거대화되어 있다. 대도시에서 그런 생협을 이용하는 조합원은 이름만 조합원이지 사실은 소비자나 다름없다. 조합원 가입에 제한이 없다 보니 생협이 좋은 음식 사가는 곳인 줄로만 아는 중산층 이상의 조합원들이 너무 많아졌다. 나 같은 생태보신주의자들만 있는 생협.(웃음) 이런 사람들에게 생협은 대형 마트의 유기농 식품 코너와 다를 것이 없다. 생협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조합원 가입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조합원으로서 알아야 할 필수적인 내용, 즉 생협의 설립 목적과 이념, 조합원의 권리와 그에 따른 의무를 알고 나서 조합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농회 같은 곳이 그렇게 한다.

  그리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작은 규모의 생협이 되어야 한다. 경북 북부를 중심으로 하는 생명의공동체생협이 상주에서도 잘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곳은 정말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모임을 가지고, 삶을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생협이 지역 기반의 소규모 생협에선 가능했다. 서울의 대형 생협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생협이 자본기업화되어 자꾸 크기를 불리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먼저 생산과 소비가 작은 단위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씨 자신도 씨앗들협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씨앗들협동조합은 대학교 안에 텃밭을 가꾸고 레알텃밭학교를 운영하던 ‘씨앗을뿌리는사람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앞으로 유기농 공동텃밭 경작, 텃밭학교 운영, 커뮤니티 만들기 등의 활동을 해나간다고 한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를 대체해 사회적 약자들이 자립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부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 또 기업 내의 권력이 한 사람이나 일가에게 독점되면서 온갖 사회적인 모순들이 발생해오지 않았나. 주식회사의 대체재일 수 있는 것이 협동조합이다. 그리고 그 운영을 조합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적인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도 언젠가 협동조합 형태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기회가 닿아 지금은 씨앗들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부(富)나 어떤 물건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은 변화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채식 요리와 베이킹을 좋아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것만큼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이 즐겁다는 이씨는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보기 드문 청년이었다. 이씨는 인터뷰 도중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인터뷰에 꼭 써 줄 것이 있다. 나는 나중에 귀촌해서 살고 싶다. 농사 잘 지을 자신은 없으니까 귀농까진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꼭 자연 속에서 살 거다. 이게 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