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1] 당신의 '마을'에서 시작하라 - 연세대 신과대 자치생협 이한솔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는 협동조합에서 일하는/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이다. 혹독한 취업난과 스펙 쌓기 사이에서 허덕이는 수많은 청춘들 사이에서 그들은 왜 협동조합을 선택했을까? 무엇이 어렵고 힘든지, 무엇이 즐겁고 보람이 되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연속 인터뷰의 시작은 교내에서 생활협동조합을 시작한 이한솔씨.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지만 어느새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쓸모없이 비어 있던 공간은 어엿한 카페로 바뀌었다. 처음 듣고는 믿기 어려웠던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났다



[청년, 협동조합을 말하다 · 1] 당신의 '마을'에서 시작하라 - 연세대 신과대 자치생협 이한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자치생활협동조합(이하 자치생협)이 처음 문을 연 것은 지난 2012년 10월. 신학관 2층, 작은 강의실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를 갖춰 놓고 커피와 차를 판매하고, 생산자 조합원이 브라우니와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와 함께 판매하기도 한다. 운영 시간은 학기 중 매주 화∙수∙목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일부러 다른 건물에서 손님이 찾아와 음료를 사 갈 만큼 인기가 있다. 발생한 수익금은 조합원 장학금이 된다. 이 모든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들의 손으로 이뤄졌다.


(사진) 이한솔(22) 자치생협 운영위원장


- 생협을 만들겠다는 생각, 어떻게 하게 되었나?

  시작은 학생이 배제된 학내 공간 운영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많은 학생들에게 학교는 생활의 중심이지만, 학교라는 공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학교가 정해 놓은 용도나 규정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동아리방 등 학생 자치 공간은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학과 내 반이나 동아리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도 휴게 공간이나 다용도 세미나실 등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학교에선 별다른 개선 의지가 없다.

  이런 생각과 함께, 식당도 편의시설도 없는 신학관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불편함, 그리고 평소 관심을 가지던 소비-생산 구조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다. 자치생협을 통해 이런 모든 문제들을 건드릴 수 있는 동시에, 나름의 해결책을 온몸으로 고민하고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신학관 건물 2층 한켠은 벽에 걸린 그림 몇 장 뿐 말 그대로 빈 공간이었다. 여기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이한솔씨는 교수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장학금 재원 마련을 위해 공간을 사용하겠다는 데 반대하는 교수는 없었고 단과대 학장, 부학장한테까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아마 교수들은 우리가 뭘 며칠 하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학기 내내 운영이 되었다. 오는 봄학기에도 꾸준히 운영할 예정이다. (웃음)

  공간을 확보한 후에는 신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학관 2층 공간에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학생들은 열성적으로 응해 주었고, 이때의 의견 수렴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여 자치생협은 카페 형태로 시작되었다. 설문조사와 함께 조합원 가입을 권유했고 출자금 1만 원 이상을 낸 조합원 27명이 모였다. 총 40여만 원을 모아 시작한 자치생협의 주 수익원은 500원∙1,000원∙1,500원의 카페 메뉴. 운영 수익을 최소화한 가격은 조합원에게도 비조합원에게도 매력적이다. 현재 조합원은 50명 이상으로 늘었다.


- 운영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몇 가지만 말해 달라.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동의 절대량이 정말 상당하다. 운영 시간이 주 3일 7시간씩인데 앞뒤로 오픈과 마감에 한 시간씩 더 든다. 운영 초반에 이런 일을 다섯 명이 나누어 했는데, 학교 다니고 자기 일 하랴 자치생협 일 하랴 정말 고생이 대단했다. 자치생협은 인간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신뢰 관계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첫 운영진이 많은 업무를 이겨냈던 것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조합원 누구에게든 업무가 지나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조율할 것이다.

  어려움을 하나 더 들자면 사업체로서의 자치생협 운영에 대한 불안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치생협이라 해도 분명 사업체인데, 공식적으로 등록된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함께 꾸리고 있다 보니 회계 등의 업무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지금은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중인데, 앞으로도 독립적인 사업체로서의 인수인계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사진)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 자치생협의 모습.


- 지난 학기 자치생협을 운영하며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운영 자체가 안정되었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운영 요일과 시간에 맞춰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생겼는데, 이것은 그만큼 자치생협이 안정되어 있고 지속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도 이윤 구조가 확립되어서,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조합원 근로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학내외의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성과다. 특히 지금의 이십대는 대개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이미 만들어진 제도와 규칙만을 경험했지, 주도적으로 주변 상황의 변화를 일으킨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학생들이 지금의 삶, 예를 들어 학내 자치 공간이 대단히 부족한 상황에서,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변화를 만들어 지속시킨 주체가 된 것이다. 이 경험을 만들어낸 자체가 자치생협에 함께한 모든 사람에게 큰 의미일 것이다.


-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어 하는 2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협동조합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찾는 일이 절대로 먼저라는 걸 잊지 않기를 바란다. 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마음을 합해 협동할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것이다. 외로우면 무너지기 쉽다. 서로 지지하고 보완해 가며 함께 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혹 성공하는 생활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은 대학생이라면,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생협을 시작할 최적의 장소일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학생들은 흔히 ‘학교에 산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말 그대로 학교는 생활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학생들이 이루는 마을과 같다. 마을 주민 사이의 물리적, 시공간적 생활의 공유가 바탕이 된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수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멀리 눈 돌릴 것 없이 바로 당신의 학교에서 시작할 수 있다.


  앞으로 자치생협이 ‘스스로 만드는 공간’으로서 굳건히 남고,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해 가기를 바란다는 이한솔씨. 개인의 문제에서부터 대학 내 문제, 청년 문제 혹은 다른 무엇이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주체적으로 변화시켜 해결해 나가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공간, 그리고 그 움직임들에 힘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자치생협이 자리하기를 꿈꾼다 한다. 사람을 믿고, 사람이 모여 만들어내는 힘을 믿는 그를 나도 힘껏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