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행복중심


'나'를 위한 행복중심


“언니, 생협 주방세제는 금방금방 지워져”

“그래, 빨리 헹궈지지? 그래서 내가 행복중심하는 거야~” 


설거지 하던 동생이 말한다. 다섯 자매가 친정에 모이면 식구가 스무 명쯤 되니, 설거지가 무척 많다. 손이 빠른 내가 설거지를 하면 좋은데, 동생들은 내가 너무 ‘설렁설렁’ 한다나. 쳇.


많은 일을 빠르게 하면서 살아야 했던 엄마 덕분에 맏딸인 나도 많은 일을 신속하게 해야 했다. 성격이 꼼꼼하지 않은 덕분에 준 LTE 급으로 해낼 수 있는 일도 좀 있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엄마에게 덜렁거린다는 핀잔을 듣는다. 이건 좀 너무하다 싶지만, 집안일까지 빠르고 꼼꼼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내게 맞는 것을 찾았다. 행복중심! 몇 번만 헹궈도 되는 비누, 세제들 흙만 털어내면 되는 채소. 껍질째 먹어 버리면 되는 과일. 갖은 양념으로 맛내지 않아도 좋은 담백한 밥상. 눈에 보이지 않은 무엇인가를 없애기 위해 씻고 또 씻고, 깎고 버리고. 결국은 영양가 있는 것은 죄다 버리고 만다. 덜렁거리는 나를 위해 의심하는 것이 피로한 나를 위해 나는 행복중심 한다.


아이를 낳고 본격적으로 생활재를 이용하기 시작한 동생.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고 나를 구박하더니. 이제 자기도 친환경 수세미에 행복중심 세제를 사용해 빠르고 깨끗하게 살림을 한다고 한다. 물론, 내가 행복중심을 하는 것은 이런 ‘필요’에만 그치지 않는다. 협동조합이란 ‘공동의 사회적 필요와  열망’을 해결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그 열망이 분명치 않다면, 혹은 그 열망이 ‘공동’의 ‘사회적’인 열망이 아니라면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이 오염된 것이라 하겠다.


19c, 로버트 오웬은 당시엔 첨단 산업이었던 방직공장을 운영했다. 당시로서는 공산주의적 이상이라고 말했던 10시간 노동, 아동 노동 금지, 노동자 학교 건립을 시도한 것은 사회에 필요한 일이었으며, 사회의 염원을 담은 일이었다. 60년대, 600%에 달했다는 고리대금과 장리쌀 때문에 가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조 금융, 신협은 소액대출과 감당할 수 있는 이자로 서민의 은행이 되었다. 꼭 필요한 일이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혼자 독식할 수도 있다. 살기 어렵다는 것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 경우가 많다. 19c 유럽이나 60년대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는 아니었으나, 오웬이나 신용협동조합은 나누어도, 아니 나누면 여럿이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존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그런 꼭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복중심이 말해 왔고, 조합원이 동의하는 열망이 ‘조합원 선언문’에 담겨 있다.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서로 배려하는 사회, 안전하고 깨끗한 사회 다양성이 존중되는 조화로운 사회. 오늘도 가슴 깊은 곳에 이 작고 담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생협에서 장을 본다. 아이야, 함께 마시자. 한잔은 너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또 한잔은 엄마가 만들어갈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안인숙 행복중심생협 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