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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항생제 원조, 24년 뚝심으로 기른 무항생제 닭




7월 복날을 앞두고 한참 바쁠 것이라 생각했던 농장이 의외로 한산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삼현농장에는 계사가 총 4동이 있다. 하지만 두 동이 텅 비어 있었다.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이라 했다. 지금쯤이면 닭을 3번은 출하했어야 하는데, 이제야 두 번째로 병아리를 들였다. 경기도 화성은 AI가 잠정적으로 종식된 것으로 판정된 지역이지만 아직 남쪽 지방에서는 AI가 발생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단다.


“보통 5월이면 AI가 잠잠해지는데, 이번엔 6월이 다 지나는데도 아직 발병 소식이 들려요. 아무래도 변종이 아닌가 싶어요. 이러다 토착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요.”

뉴스에 나오지 않았지만 AI는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란다. 보통 5월이면 사그라드는데, 이번엔 아직도 AI에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농장 입구에도 방역 장치를 설치해 두었다. 원래는 4동 전체에 병아리를 들여야 하는데, 복날을 앞둔 시기에도 두 동에 12,000마리만 들였다. 두 달여를 쉬다가 6월 19일에 갓 들인 병아리다. 


“점점 양계 농장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네요.”

삼현농장 김득남 생산자가 웃으며 말한다. 옆에 함께 있던 삼현농장 1대 생산자이자 김득남 생산자의 아버지인 김준혁 생산자는 “요즘 아들 녀석이 고생이 많다”며 덩달아 웃는다. 


무항생제 원조, 삼현농장

89년부터 24년 동안 한 자리에서 닭을 길렀다. 삼현농장은 ‘무항생제’라는 개념조차 없을 시절, 사료에서 항생제를 빼고 닭을 기른 ‘무항생제 원조’ 농장이다. 그래서 삼현농장만의 ‘노하우’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농장보다 닭을 더 잘 기르는 방법, 항생제 없이도 닭이 건강한 비법 같은 것.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김득남 생산자는 바로 답했다. 노하우 같은 건 없다고.


“그냥 기르는 거예요. 사료랑 물만 먹이는 거죠. 건강한 녀석은 건강하게 자라고, 아픈 녀석은 아픈 거예요. 우리는 병아리가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고요. 자연치유라고도 하죠. 가장 자연스럽게 기르는 것이기도 하고요.” 


닭을 기르는 건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하는 것과 다르다. 일률적인 품질로 같은 물건을 생산하듯 닭을 길러낼 수 없다. 어떤 날은 날씨 때문에, 어떤 때는 병아리 종자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그렇게 24년 동안 닭을 길렀다. 


김득남 생산자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일을 배웠다. 학교 다녀와서 계사 바닥에 깔아 두는 왕겨를 나르고, 군대에 있던 시절 휴가 나와서 병아리 똥을 치웠다.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퇴근 후에 와서 병아리를 돌봤다. 그렇게 도우던 일이 직업이 된 것이다. 김득남 생산자는 닭이 잘 자라면 정말 재밌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닭을 기르는 것에만 집중하기 힘들다고 한다. 사료와 왕겨 가격이 계속 오른다. 거기에 사료 회사들이 중간 마진을 취하려고 농장을 속이는 일도 빈번하다. 



삼현농장 계사 바닥은 왕겨를 10cm 정도 깔아 둔다. 항생제를 뺀 무항생제 사료와 지하수를 먹인다. 볕이 잘 들고, 통풍도 잘 되는 계사에서 자란다.



“무항생제라고 같은 무항생제가 아니죠”

요즘 시중에도 ‘무항생제 닭’이 많아졌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무항생제 닭은 진짜 무항생제 닭이 아닐 수도 있다고 김득남 생산자는 말한다. 


“무항생제로 키워도 사료만 무항생제일 뿐이지, 다른 방법으로 항생제를 먹이는 경우가 있어요. 검사를 한다고 해도 ‘무항생제’라는 기준이 항생제가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면 ‘무항생제’가 되는 거라서요. 항생제 사료를 먹이다가 출하 일주일 전부터 먹이지 않으면 검출되지 않고요.”


그렇게 키운 닭은 백숙으로 끓이면 맛도 다르다고 한다. 점점 양계 농가에서 닭을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한 공간에 많은 병아리를 넣는다. 같은 무항생제 닭이라도 그런 사육환경에서 맛 차이가 나는 것이다.


조합원이 이용이 지속 가능한 생산을 만들어내는 것

삼현농장 닭은 30일 정도 키워져 도계한 뒤 씨알살림축산으로 보낸다. 처음 농장을 시작하면서부터 씨알살림축산에서 도맡아 닭을 가공하고, 유통했다. 하지만 삼현농장도, 씨알살림축산도 대한민국의 거대한 유통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점점 소규모 양계 농가는 사라지고 대규모 양계 ‘공장’이 생기고 있다.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건물에서 온도, 습도, 사료양, 물, 조도 등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자동화 시설에서 수십 만 마리가 길러진다. 이런 자동화 설비가 갖춰진 곳은 30만 마리를 기르는 데 한 두 사람의 인력이면 충분하단다. 그렇게 길러진 닭은 또 대규모 가공업체로 넘어간다. 점점 삼현농장이나 가공하는 씨알살림축산 같은 소규모 농가나 업체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 농장에서도 언제까지 닭을 기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24년 동안 닭을 길렀는데도 돈을 벌기는커녕, 이 일을 지속하는 것조차 어려워졌으니까요. 조합원들이 믿고 많이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양계 업자들이 모인 곳에서 강연 같은 걸 하면 ‘삼현농장처럼만 기르면 된다’고들 이야기해요. 약을 사용하지도 않고, 넓은 공간에서 사료와 물만 먹고도 자라니까요.”


김득남 생산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계사를 돌며 병아리들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온도와 습도를 체크한다. 온도계가 있는데도 직접 몸으로 온도를 느끼면서 닭을 돌본다. 조금 건조한 것 같으면 안개를 뿌려 주고, 열풍기나 창문을 조절하며 온도를 맞춰 준다. 눈에 보이는 수치와 실제 병아리가 느끼는 온도는 세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 설비가 갖춰진 대규모 농가에서는 버튼 하나 누르면 끝날 일이지만, 김득남 생산자는 직접 몸으로 느끼고 몸을 움직이며 농장을 운영한다. 이렇게 기른 닭을 7월, 조합원에게 공급한다. 자연스럽게, 24년의 뚝심으로, 부자의 노력으로 기른 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