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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수는 안녕한가? <생수, 그 치명적 유혹>



서울 변두리에 살던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 던져놓고 동네 뒷산 탐험으로 해가 지는 줄 몰랐다. 목이 마르면 약수터에서 목을 축였고, 약수터까지 갈 여력마저 없으면 졸졸 흐르는 냇물을 그냥 마시기도 했다. 한 번도 탈이 난 적이 없으니, 그 시절 동네 뒷산은 깨끗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라치면,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곳곳에 물은 흔했고, 무심코 마셔도 탈이 나는 일은 없었다.
 
생수, 정수기의 갈림길
하지만 언젠가부터 동네 뒷산의 냇물은 말랐고, 수돗물도 함부로 마실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삶이 변했다. 사람들은 "물을 사먹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라는 몇몇 사람들의 예언(?)을 애써 무시했지만, 결국 오늘 우리는 물을 사먹는다.

대동강 물을 팔았다던 봉이 김선달이 수많은 사람으로 환생이라도 한듯, 요즘 대형 마트를 가면 갖가지 생수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물은 사먹는 시대를 넘어, 이제 더 좋은 생수를 찾아 혹은 더 싼 생수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우리 집은 한 보리차 광고 문안처럼 "끓인 보리차를 차게 해서 마신다." 보리차일 때도 있고 옥수수차일 때도 있지만,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얼음을 얼리고 각종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생수도 떨어지는 날이 없다. 오히려 아이들은 보리차나 옥수수차보다 일명 “투명한 물”을 더 좋아한다. 보리차보다 생수가 목 넘김이 좋다는 게 큰아들의 설명이다. 소주나 맥주도 아닌데 목 넘김을 따지는 걸 보면, 뭔가 다르긴 한가보다.

그런데 한 달 전 서울에서 김포로 이사를 하면서 새 집에는 정수기를 설치할까 말까 살짝 고민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때마다 물병을 닦아야 하는 ‘귀차니즘’ 때문이다. 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를 애써 무시하고 모른 척 보리차를 다시 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물 마시는 내내 찜찜할 기분과 아내의 무서운 눈초리를 생각한다. 찜찜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아무래도 정수기로 바꾸는 것일 게다.
 

 
악당들의 안전 식품, 생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최근 생수에 숨겨진 몇몇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공재’였던 물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대 최고의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는지 일깨우는 《생수, 그 치명적 유혹》이 진실 제공의 근원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번역자가 아니라 ‘환경운동연합’이 단체 이름을 걸고 번역을 담당했다. 그간 환경운동연합은 수자원 공공성 확립과 수질 개선 등 물에 대한 기본권과 하천 생태계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9년부터는 4대강 사업 저지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단체가 왜 별안간 생수에 관한 책 번역에 나선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생수에 얽힌 진실들을 올바로 직시하면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 특히 물에 얽히고설킨 사회적 정의를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생수’ 하면 깨끗한 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생수를 가리켜 ‘악당들의 안전 식품’이라고 일갈한다.

생수의 수질 기준 자체도 모호할 뿐 아니라, 심지어 미국 10여 개 주는 생수 관련 규제조차 없다. 생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수돗물을 적으로 설정하고 ‘수돗물은 독약이자 허드렛물’이라는 거짓을 퍼뜨린 것이다.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에게는 낭만이라도 있었지만,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에게는 과대 과장과 거짓만이 난무할 뿐이다.
 
불신, 마케팅, 책임회피가 만들어낸 허상
요즘 생수는 단지 상표일 뿐 ‘원수’(原水)의 개념은 사라졌다. 1845년부터 ‘폴란드 스프링’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던 유서 깊은 생수는 이제 상표만 ‘폴란드 스프링’일 뿐 미국 메인 주 전역에서 취수해 판매한다. 에베레스트 생수에는 눈 덮인 산이 그려져 있지만 텍사스 남부에서 물을 퍼올린다. 심지어 ‘요세미티 생수’는 LA 수돗물이 원수일 정도다.

저자는 생수시장의 성장 요인으로 "시민들의 수돗물 불신, 생수업자의 약장수 마케팅, 국가의 책임회피"를 꼽는다. "세 박자 왈츠 속에 생수는 더 빠르게, 더 강렬하게 우리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생수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물의 가치, 인권과 책임, 환경 우선과 보호, 사유재와 공공재, 정부 개입과 개혁 등을 어우르는 데까지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우리가 사려 깊게 행동하여 현재의 생수 열풍이 공공 수도 체계가 실패한 결과라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목말라하는지 진실로 이해할 때 비로소 생수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책의 부록으로 ‘한국의 생수는 안녕한가?’라는 글을 덧붙이며 ‘위험하고 은밀한 한국형 생수 산업’을 고발한다. 우리가 매일 마셔대는 생수도 세계 여러 나라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생수 산업은 플라스틱 병 등 과도한 쓰레기를 양산하면서 지구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마실 물이 없어 신음하는 제3세계 사람들에게 생수를 제공하자는 사회운동이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대책일 리 만무하다.
 
값싸고 건강한 물을 마실 권리
물을 놓고 벌어질지도 모르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 심지어 전쟁까지 일어날 수도 있다. 저자의 주장은 때론 과격해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값싸고 건강한 물을 마실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는 것이다. 대형 마트로 생수를 사러 가야 할지, 정수기를 설치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아니, 그냥 이대로 계속 끓인 보리차 혹은 옥수수차를 차게 해서 마셔야 할까 보다.
 
 
글_장동석(출판평론가) 9744944@hanmail.net


* 이 글은 여성민우회생협 연합회 소식지 <행복중심> 9,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