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 채종포 일손돕기 참여 후기]꿈틀거리며 살자,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살자, 지렁이처럼



행복중심생협 조합원이 된 지 십수 년째,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매장보단, 가정공급을 주로 이용했다. 생협 조합원이지만, 협동조합의 의미보다는 안전한 먹거리를 사 먹을 수 있는 차별화 된 마켓 정도로 여겼다. 여성주의 문화 단체에서 일해 왔지만, 일에 치여 바쁘게 살다 보니 아무리 좋은 일도 당장 내 일과 관계가 없으면 건성건성 일별하는 정도로만 관심을 가졌다.


2014년 가을, 몸도 힘들고 마음도 지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로부터 퇴직 선물을 받았다. 꿈꾸는 지렁이들(꿈지모)이 번역한 책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늘 궁금했던 문젠데, 속마음을 들킨것 같았다. 앞으로의 삶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가보기로 했다.




2015년 4월, 행복중심생협 장보기 홈페이지에 장 보러 들어갔다가, ‘토종씨앗 지키기에 함께 해주세요!’라는 문구를 봤다. 집 앞 공동 텃밭에서 채소들을 키우던 참이라, 눈에 쏙 들어왔다. 씨앗이 상품으로 전락해 다국적 기업에서 사다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는데, 지킬 수 있는 씨앗이 있다면 당연히 지켜야지. 이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행복중심생협이 달리 보였다. 물론 그 전에도 여러 매체와 생협 홈페이지를 통해, 또 주변 친지와 지인을 통해 생협이 우리 삶에 필요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보니 확실히 돋보였다.


참여한다고 온라인 상에서 신청을 하고 전화를 드리니, 당황한 듯한 반응이 느껴졌다. ‘기금 참여만이 아니라, 토종씨앗 채종포에 직접 간다고요? 정말?’ 이런 느낌이랄까. 당황인지 반가움이지 모를 묘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이미 ‘토종씨앗 지키기’라는 문구에 꽂혀버렸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갈 기세였다. 조합원 활동은커녕, 매장 근처에는 얼씬한 적도 없이 오로지 온라인 장보기만 해온 무늬만 조합원인 내가, 서울 동북생협 활동가들 틈에 끼어 횡성 채종포까지 갔다.






그리고 올해, 함께 가자는 연락을 받고 두말없이 따라갔다. 작년에 뙤약볕 아래서 300여 평 밭에 검은 비닐 멀칭하고, 구멍 뚫어 콩과 옥수수를 심고, 고라니나 멧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면서, 공동 텃밭에서 채소 키우는 체력으로 농사는 어림도 없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서른 명 남짓이 함께 하니까 두어 시간 만에 뚝딱 끝났다. 농사 일이란 그런 건가? 사람 사는 일도 그런 거겠지?


여성농민회 회원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농민으로 사는 것도 모자라 ‘여성농민회’라니.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 서울에서도 ‘여성’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농촌에서 ‘여성 농민’이란 이름표를 달고 살아간다니. ‘함께’한다는게 이들이 온갖 사연 다 품어 안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씩씩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이란 생각이 든다. 흩어지면 할 수 없는 일들이 함께하니 거뜬해보인다.


농사 일 끝내고 횡성여성농민회에서 준비한 맛깔지고 풍성한 점심을 먹은 뒤, 사회자가 뒤늦게 오신 전국여성농민회 강원연합 회장님께 인사말씀을 부탁드린다.


“아침에 이불 속에서 일어날까 말까 갈등했어요. 일어나서는 오늘 채종포에 가야 하나, 집안 일을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일을 하다가 지금이라도 채종포로 가야 하나, 그냥 일해야 하나 했어요. 지금은 좀

더 있어야 하나, 이게 그만 가야 하나 갈등하고 있어요. 하루 종일 갈등하며 살아요.” 다들 와르르 웃었다.




후식으로, 횡성여성농민회에서 준비한 수수가루를 익반죽해서 다 함께 수수떡을 만들어 먹었다. 천막 한 켠에 누워서 깜빡 잠이 드신 여성농민회 몇몇 분들. 슬그머니 다가가 갈등의 여왕 어깨를 살살 주물러드렸다. 사랑과 존경을 듬뿍 담아.


함께 했던 행복중심생협의 서울동북생협, 고양파주생협 조합원들, 지원 오신 홍천여성농민회 회원들, 횡성여성농민회 회원들,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혜승 행복중심 서울동북생협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