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유기농업,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야”


행복중심생협연합회는 지난 8월 20일 수전 10시 30분,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3층 바실리오홀에서 ‘친환경 유기농업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좌담회를 열었다. 이번 좌담회는7월 말과 8월 초에 방영된 KBS <파노라마>에서 확인된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의 한계를 살피고, 친환경 유기농업의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열렸다.


개방농정 등 농업정책 실패가 부른 한국 농업의 위기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조원희 행복중심생산자회 회장은 “한국 농업의 위기는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최근 농민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올해 들어 과일과 채소, 축산물, 곡류까지 어느 것 하나도 가격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생산비 이하로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매년 농업 경영비는 10% 씩 오르는데 농업 소득률은 30%에 그치는 등 생산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재 농업의 현실”이라며 이런 구조는 “1989년 UR 협상부터 이어져 온 정부의 ‘개방농정과 농업구조조정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004년 한·칠레 FTA 발효 이후 10년 동안 칠레산 포도와 돼지고기 수입액은 3배~10배 정도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국내산 포도 생산량은 34%나 감소했다. 포도 생산 감소량만큼 다른 작목으로 품목을 전환하면서 전체 농산물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회장은 “FTA는 시간이 지날수록 관세가 낮아지고2027년이 되면 쇠고기를 비롯한 거의 모든 농산물의 관세가 없어지는 만큼 그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농업의 위기는 소비자의 먹거리 위기를 불러

조 회장은 “농업 위기가 가속화되면 소비자의 먹거리 위기와 식량주권이 위태롭게 된다는 경고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며 “25년 전 행복중심생협의 창립을 비롯해 다른 생협의 창립 시기가 농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초창기 생협 운동을 시작한 조합원 활동가들이 생산 농민들과의 계약생산을 통한 직거래와 친환경 유기농업을 방향으로 설정한 것은 한국 농업의 본질적인 문제가 고투입·고비용을 특징으로 하는 녹색혁명형 농업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제대로 진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속 가능한 순환형 농업으로

조 회장은 “오늘날 농업·농촌·농민 문제와 건강한 농산물을 이용하고 싶다는 소비자의 바람을 충족하려면 ‘지속 가능한 순환형 농업’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며 “농업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농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약과 화학비료,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의 자연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환경적으로 건전한 농업을 지향하면서, 생산자 농민의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원하는 경제적으로 수익을 보장하는 ‘농업 생산·소비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조 회장은 “생협 조합원을 비롯한 소비자들도 잔류 농약 검사결과와 같은 결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농업 생산 과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은 농산물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도 중요한 만큼 현명한 소비를 하려면 생산 과정을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현명한 소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의 한계

주영진 행복중심 생산자회 사무국장은 “최근 KBS <파노라마>의 ‘유기농의 진실’에서 제기한 문제점은 그동안 친환경 농업 현장에서 꾸준하게 제기되었던 문제”라며 “이번 방송을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문제를 개선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두터이 하는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

주영진 국장은 “현재 시행 중인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의 근간은 잔류농약검사”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를 시행하면서 ‘농약이 검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으로 접근해, 농사를 짓는 과정보다 결과에 따라 친환경 인증을 부여하는 결과 중심의 인증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한편 주 국장은 “우리나라는 60~70년대부터 다수확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했고, 그 결과 OECD 국가 중에서 단위면적 당 농약과 화학비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되었다”며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유기농업이 땅과 환경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라는 이해가 부족한 점이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의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과정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또한 ‘지역 순환형 농업’이 아닌 유기 자재에 의존하는 농업은 한국 유기 농업의 한계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농업의 생산 과정보다 인증에만 치중하다 보니 정부 목록 공시에 등록된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정부 정책도 친환경 농자재 지원에 집중되어 있어 유기 농업이 유기질을 활용한 농법으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했다. 생태적인 고민과 대안을 위해 시작한 유기 농업이 농업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생존전략으로만 축소되어 인식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낸 것이다.

주 국장은 이런 유기 농업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성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외국 등의 사례를 참고해 ‘결과 중심의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입장을 두루 반영한 ‘과정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생산자·조합원 참여형 생산관리 시스템인 ‘행복중심생협 자체인증기준’

허경희 행복중심생협연합회 상무이사는 “현재 잔류농약 검출과 같은 사고는 비산이나 자연재해에 의한 사고보다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가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에 의존한 생산 관리로는 공급 불안정과 잔류농약 검출과 같은 식품사고에 생협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허경희 상무이사는 “행복중심생협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합원과 생산자들의 토론을 통해 ‘행복중심생협 생활재 자체인증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허 상무이사는 “자체인증기준은 ‘투명한 정보공개’에 기반을 두고 생산자의 생산 현황을 반영해 지속가능한 생산을 보장하고, 조합원이 신뢰할 수 있는 생활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조합원과 생산자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생활재 생산 과정에서의 안전성과 지속가능함을 확보해 가려는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한 위기에 처한 한국 농업을 회생시키는 길은 “농촌 공동체 복원과 지역 순환형 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조합원과 생산자의 합의부터 시작일 것”이라며 “행복중심생협 조합원과 생산자가 함께 ‘자체인증기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시작해 가자”고 제안했다.


▲▲ (왼쪽)마지막으로 발제하고 있는 허경희 행복중심생협 상무이사, (오른쪽) 발제자에게 질문 하는 조합원
▲참석한 조합원과 생산자가 분임토의를 하고 있다.

 

발제가 끝나고 참석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질의응답 중에서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질문 친환경 농산물 가격이 계속 올라 소비자 부담도 커졌다. 결국 일정한 소득이 있는 사람들만이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없는가?

조원희 현재 기준은 농촌진흥청에서 고시한 자재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 자가 제조한 퇴비는 인정하 지 않기 때문에 자재 업체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산비는 증가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자가 제조한 퇴비 등을 사용하는 지역순환형 농업이다. 자체인증기준에서 이에 대한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 기대한다. 동시에 유기 자재의 사용량을 감소시키면서, 생산비용을 줄이는 방법 역시 꾸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질문 행복중심생협 자체인증기준을 시행하면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가?

허경희 아마도 정부 인정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보다는 소비자 운동의 한 방법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자체인증기준은 친환경 농업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정부 주도 친환경 인증제도와는 내용 자체가 다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꿔가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이 달라지면 정부에서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행복중심생협에서 시행 중인 광우병 전수검사나 방사성물질 취급기준(세슘134·세슘137·요오드131의 취급 기준을 성인 7.4Bq/kg, 영유아 3.7Bq/kg로 규정)도 정부 기준과 다르고,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은 이러한 노력을 인정해주고 있지 않은가.

 

<토론 주제> 조합원과 생산자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안과 자체인증기준을 조합원과 나누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A조 생산자는 지역 순환 농업을 실천하고, 조합원은 생산자를 믿고 소비하는 것이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조합원이 서로 공유해야 한다.

B조
 현재 인증 기준과는 다른 자체인증기준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켜야 한다. 오늘 좌담회의 주요한 내용이었던 ‘결과를 중시하는 인증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인증’으로 우리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변화를 공유하고, 서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

C조 조합원에게 자체인증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교나 어린이집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정부 인증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 인증과의 문제도 더 심도 있게 토론하면 좋겠다. 또 좌담회 내용 중 지역 순환 농업의 일환으로 유기 농업 단지 조성이 좋은 방안이라 생각한다. 단지를 조성하고 지속적인 관리와 점검을 통해 지역 순환 농업을 추진하면 좋겠다.

D조 생활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잔류 농약 여부와 인증 같은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생산자의 철학이나 생산 과정이 지금 사회에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