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농수산 최광운 생산자

그런 시절이 있었다. 별빛 하나 없는 깊은 밤처럼 사방이 어둡기만 했던 시절. 많은 사람이 숨죽였을 때 청년 최광운은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료들과 조직을 꾸리고 저항했다. 절망스럽고 슬픈 세상에 맞선 대가는 가혹했다. 시대의 시련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청년 최광운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외삼촌이 계시던 시골로 내려갔다. 콩과 옥수수를 심고 김을 매며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의 어려움과 위대함을 함께 느꼈다.


2014년 1월 3일 새벽 부산 공동어시장 입구. 24시간 돌아가는 어시장은 항상 사람이 있다.


어시장에 들어온 고등어 배가 고등어를 내리고 있다


"며칠만 굶어 보면 농업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1983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선배, 동료와 함께 친환경 농산물 판매점을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바랐더 최광운 생산자가 친환경으로 인생 경로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최광운 생산자는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먹을거리 생산을 책임지는 농업과 농민 문제 해결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다. 


생산자가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바로 연결하는 직거래 개념을 도입했다. 판매점을 시작한 목적 자체가 농민에게 제값을 주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국 농업이 친환경 농업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짐승에게도 못 먹일 농산물을 사람에게 먹일 수는 없었다. 농약 사고로 농민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한 때였다.


믿을 수 있는 국내산 수산물도 필요하다


이후 최광운 생산자는 국내산 농산물을 병원과 학교 급식 등에 납품하고, 대학 학생식당을 운영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1997년 한 생협의 구매 실무자가 최광운 생산자를 찾아왔다. 당시 생협들은 쌀과 채소, 과일 등 농산물만 공급할 때였다. 조합원들은 채소는 생협에서 이용했지만, 생선은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사야 했다. 생선도 믿을 수 있는 생협에서 공급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최광운 생산자는 소비자들이 국내산 수산물을 먹을 수 있게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산물과 관련한 기준이 명확하지도 않았을 그때, 최광운 생산자는 어디에서 언제 잡은 생선인지, 원산지부터 제대로 확인하고 조합원에게 알려내자고 마음 먹었다. 내친김에 1차 농산물 부문을 정리하고, 수산물 공급에 전념하기로 했다. 생선이라는 한 분야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소비자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고 싶었다. 그리고 한 해 뒤인 1998년부터 행복중심생협(여성민우회생협)에 수산물 공급을 시작했다. 이름도 '바다에서 짓는 농사'라는 뜻으로 해농수산이라 지었다. 


어시장에 들어온 고등어를 살피는 최광운 생산자. 요즘 바닷속 상황도 육지와 별반 다르지 않아 제철 생선 어획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가장 맛있을 때 잡아 조합원 필요만큼 공급한다

생선도 제철이 있다. 잡히는 시기도 중요하고, 어떤 바다에서 잡혔느냐에 따라 맛도 다르다. 고등어는 제주도를 끼고 있는 232 해구(바다 위에 설정한 구역)에서 11월부터 1월 사이 잡힌 고등어가 육질도 탱탱하고 맛이 좋다. 강르 전에 서해에서 잡히는 고등어는 쉽게 바스러지고 맛도 덜하다. 


그래서 최광운 생산자는 매년 제철에 생선을 수매한 후 급속 냉동했다가 예상 조합원 공급량만큼 지느러미와 내장과 같이 이용하지 않는 부위를 그때그때 손질해 공급합낟. 생선을 손질한 후에는 바닷물과 비슷한 2% 정도의 엷은 소금물에 2번 헹군 후, 다시 급속 냉동한다. 그래서 해농수산에서 공급하는 생선은 자반고등어를 제외하고는 간이 심심한 편이다. 생물 생선과 비슷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간을 못 맞추는 일은 없겠다. 


이상기후로 수입 수산물에 자리를 내주는 국내산 수산물


바닷속도 육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명태와 꽁치는 이제 연근해에서 만나기 어려운 생선이 된 지 오래다. 다른 생선도 비슷하다. 해가 갈수록 제철에 잡히는 생선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음식점에서는 수입 수산물을 취급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도 수입 고등어와 갈치가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수입 생선이 한국인의 식탁을 서서히 점령하고 있다. 수입 생선이 늘면서 여러 골칫거리도 속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원산지 표시 위조는 치명적인 도적적 해이로 지목받고 있다. 


원산지 투명한 공개, 조합원 신뢰의 시작

해농수산 최광운 생산자는 생선의 원산지를 정확하게 공개한다. 이 모두 소비자 조합원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한반도 연근해에서는 잡히지 않는 명태와 꽁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근해에서 잡힌 생선을 공급한다(연해는 한반도와 제주도로부터 20마일 이내의 수역을, 근해는 동경 175도부터 동경 94도와 남위 11도에서 북위 63도의 선으로 둘러싸인 수역을 말한다).


그리고 언제, 어느 바다에서 잡힌 생선인지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투명한 정보공개는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최광운 생산자의 원칙이다. 



2014년 1월 4일 수매한 삼치. 1월부터 3월까지 소흑산도 부근에서 잡은 삼치를 공급한다. 요즘에는 어획량이 줄어 1번 바다에 나가면 1주일에서 20일 정도 조업을 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배에서 급속 냉동해 어시장으로 들어온다.



행복중심생협이 방사능 관련 우리 사회 기준이 되어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식품 방사능 오염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커졌다. 수산물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최광운 생산자는 행복중심생협의 방사성물질 취급 기준에 맞춰 수매 후 공급 전에 방사성물질 정밀검사를 마친 후 공급한다. 검사 결과도 행복중심생협에 그대로 알려온다. 아직 국내산 수산물은 심각한 결과치가 나온 적은 없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이 느끼는 우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합원의 우려를 덜기 위해서라도 꾸준하게 검사하고, 검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행복주심생협을 비롯한 전체 생협들이 정부의 방사능 관련 안전 기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대처가 오히려 국민들의 걱정을 키웠는데, 국민의 걱정을 해소하려면 느슨하게 정해진 국가 기준치를 높이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별을 보고 걸어온 사람

2014년 1월 33일, 새벽 삼치 수매를 위해 부산 공동어시장을 찾아 삼치의 상태를 확인하는 최광운 생산자를 보며, 정호승의 시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가 떠올랐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중략)…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여와서 가믓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가혹한 시절 용기 있는 민주주의자였던 청년 최광웅는 "생선으로 생협 운동을 한다"고 말하는 행복중심생협 생산자가 되었다. 새벽 어시장을 환히 밝히는 전등이 청년 최과운이 꿈꾼 희망의 별빛 같아 보였다. 



부산 공동어시장에서 생선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

*제목도 정호승의 시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에서 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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