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아픈 이름, 갑(甲)과 을(乙)

세상이 한동안 떠들썩했습니다. ㄴ우유 대리점주가 본사의 횡포에 못 견디고 자살한 사건이 발표되었습니다. 연이어 ㅂ주가, ㄹ백화점 등이 매출성과를 내기 위해 밀어내기식으로 압박을 주어 가맹점주, 직원이 아까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줄을 이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ㅍ에너지사의 상무는 비행기 기내식으로 라면을 끓여올 것을 요구해 ‘라면상무’라는 이름을 얻었고, ㅍ베이커리 회장님은 호텔 지배인을 지갑으로 때려 ‘빵회장’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자의 횡포, 『甲과 乙』의 관계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들 속의 甲乙관계에는 힘있는 甲, 힘없는 乙이 있습니다. 힘이 없으니 억울해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들어있습니다. 이상합니다.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 힘센 자가 힘 없는 자를 지배하면 되니까요.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지요.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목적을 이루거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한 것입니다.

우유대리점, 프렌차이즈 빵집 등 한국은 자영업자가 많은 나라입니다. 자영업자 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가게가 떠오릅니다. 어릴 적 동네에는 많은 가게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구멍가게가 세 개 있었는데, ‘첫째 가게’ ‘둘째 가게’ 이런 이름을 붙여 부르고, 각 가게마다 특색이 있어서 우리가 좋아하는 파인애플하드를 사먹으려면 셋째 가게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얗고 긴 국수를 널어 말렸던 방앗간,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했던 대폿집, 참깨를 슥슥 볶아 고소한 냄새를 골목 가득 풍기던 참기름집,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아저씨가 만두를 빚던 호빵집. 어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고, 그들의 자식이 내 친구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동네가게가 있지만 예전처럼 하나하나 기억되는 가게는 흔치 않습니다. 비슷비슷한 프렌차이즈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가난했지만 자유로웠던 사람들이, 자신의 생계를 몇몇 개의 프렌차이즈 본점의 권력에 의존하는 나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생협의 계약서에도 甲과 乙이 있습니다. 생협이 甲이고 생산자는 乙입니다. 그럼, 생협에서 甲乙관계는 어떠할까요? 생협은 신뢰할 수 있는 생활재를 적정한 가격에 조합원에게 공급해야 하므로, 생산자와 품질과 가격을 가지고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편, 생협은 산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생활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믿을 만한 산지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을 형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002년 볶은 소금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는 식양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생산지 마하탑에서 볶은 소금을 취급하고 있는 생협들이 앞다투어 판매를 중단하였습니다. 그런데 행복중심생협에서는 공급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없자, 왜 판매중단을 하지 않느냐고 생산자가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마하탑 소금을 검사해 보고 중단해도 늦지 않다’ 이것이 우리의 답변이었습니다. 소금을 볶는 과정에서 불완전 연소 때문에 다이옥신이 검출되지만, 마하탑은 뚜껑을 열어놓고 소금의 불순물이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300℃로 볶기 때문에 검사결과도 다이옥신이 거의 없는 것으로(0.010pg)로 나왔습니다. 결과를 알아보기도 전에 성급하게 행동했던 생협들에게 생산자는 많이 섭섭해 하셨고, 믿음을 갖고 기다려준 행복중심생협의 신의에 찬 행동을 두고두고 감사해 하셨습니다.

우리 생협의 甲과乙의 관계는 바로 이러합니다. 더 믿어주고, 더 양보하는 관계입니다. 계약의 주체로 서로 존중하고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생협과 생산자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생협의 甲乙관계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이해하고 밀어주신 생산자의 생활재를 책임소비로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겠지요? 더운 여름날, 조합원 여러분! 생협 생활재로 신뢰와 상생도 함께 구입하세요.

안인숙 행복중심생협 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