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과 통(通)하는 사람들, 933환경농업영농조합법인

경북 상주 모동에 있는 백화산. 병풍처럼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이 산의 높이는 해발 933m. 지역의 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농사꾼들이 공동체 이름을 ‘933’으로 정했다. 그렇게 933환경농업영농조합법인의 이름이 탄생했다. 뜻을 알고 들으니 더욱 정겹다.
933환경농업영농조합법인은 여성민우회생협에 포도와 복숭아를 공급하는 생산지로  조합원 4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친환경농업인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농사를 짓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박석원 생산자, 933환경영농조합법인 대표

박석원 생산자에게 농사를 지으며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물었더니 ‘힘든 거 하나도 없다’ 말한다. 20년 동안 포도나무를 키우다 보니 포도가 주인 마음을 다 아는 것 같다고. 아프지 말라 하면 안 아프고, 잘 자라달라 하면 잘 자란단다.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포도 농사를 오래 지었다 해도 농사라는 게 마음으로만 되는 건 아닐 텐데. 그러다 주렁주렁 포도가 열린 나무들 사이로 겨우 포도 한 송이를 힘겹게 붙들고 있는 나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하우스 곳곳에 그런 나무들이 있다. 

말라버린 나뭇가지


말없이 그 나무를 쳐다보자 박석원 생산자가 말한다. 올해 초, 이상기후 현상으로 냉해를 입은 나무라고. 하지만 죽지 않고 살려는 발버둥으로 겨우 겨우 포도 한 송이를 열어냈다. 

그제야 ‘힘든 거 없다’는 박석원 생산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포도가 박석원 생산자의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그도 포도의 삶을 아는 것이다. 작년에도 이상기후 현상으로 포도 농사가 힘들었다. 또 다시 겹친 냉해로 포도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다. 박석원 생산자는 그 포도나무 곁을 묵묵히 응원하며 지켜줬다. 그 치열한 싸움을 알기에 힘든 거 하나도 없다 말했을 것이다. 

열심히 익어가는 포도들



"포도를 쳐다보는 표정이 정말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요!"
"당연하지요, 20년을 만난 사인데..."

박석원 생산자는 인위적으로 생장을 조절하는 호르몬제, 제초제, 토양소독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잿빛 곰팡이병, 탄저병 등 병충해를 막기 위해 현미식초와 목초액을 사용한다. 일반화학농약대신 석회보르도액과 석회유황합제를 쓰고, 화학비료대신 소똥, 쌀겨, , 톱밥, 미생물을 90일 이상 발효한 퇴비를 준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만 나무에 줘야 한다는 게 박석원 생산자의 지론이다. 이렇게 길러낸 포도가 열심히 익어가고 있다

 
하우스 가득 포도나무의 열심이 느껴진다. 양분을 빨아들이고, 각종 병과 싸움을 하며 여름 내내 여성민우회생협 조합원에게 공급할 포도를 익힌다. 달기만 한 포도는 금방 질린다. 하지만 상주 포도는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어우러져 진정한 포도 맛을 느낄 수 있다.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은 상주 지역의 특성과 그 환경에서 자라려 하는 포도나무의 생존력이 맺은 결실이다. 




성동현 생산자

복숭아만큼 가녀린 과일이 있을까? 복숭아나무는 과실나무 중에서 특히 병에 약하다. 여성민우회생협에 공급되는 복숭아는 저농약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저농약 농사라도 복숭아를 저농약으로 키운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고. 병에 잘 걸리지 않도록 땅을 준비하고, 나무 내성을 기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생산자의 몫이다. 성동현 생산자도 그렇게 복숭아를 기른다. 성동현 생산자도 그렇게 복숭아를 기른다. 친환경 천연 방제법으로 석회보르도액과 석회유황합제를 사용하고, 세균성구멍병, 잿빛곰팡이, 심식나방 등을 쫓으려 현미식초와 목초액, 막걸리를 쓴다. 복숭아나무 주변으로 수북이 풀이 자라지만 성동현 생산자는 제초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자라면 깎고, 또 자라면 또 깎고. 반복되는 풀과의 전쟁에서 자연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농사일에서 가장 힘든 게 풀을 깎는 일이지만, 그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서일까. 친환경 농사꾼으로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비가 쏟아진다. 이 비를 맞고 복숭아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복숭아는 오전 10시 전에 따야 무르지 않는다. 수확할 시기를 놓치면 나무에서 떨어져 상처가 나고, 그 복숭아는 출하할 수 없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포장을 하고 조합원에게 공급한다. 모든 과정에서 세심하게 배려해야 맛과 품질이 상하지 않는다. 복숭아는 그런 과일이다.
 




성동현 생산자가 붉은 빛 복숭아를 건넨다. 한입 베어 무니 입 안 가득 진한 향기가 퍼진다. 가녀리지만 진한 향기를 머금고 있다. 성동현 생산자는 이 진한 맛을 조합원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한다.  



 이상기후와 장마를 견디며 포도와 복숭아가 무르익고 있다. 자연의 섭리와 생산자의 정성이 자란 여름 과일과 함께라면 무더운 여름도 거뜬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여성민우회생협 안내지 8월 1호에 실린 '생산자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