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가진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다시 보기


제작진은 면화의 원산지 인도 비다르바 지역을 찾는다. 비다르바에서 농민들의 자살이 속출해서였다. 면화 생산 농민들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바로 면화 씨앗을 사다 쓰면서 쌓인 빚 때문이었다.

인도 비다르바 지역은 면화의 ‘원산지’였지만, 다국적 종자기업의 GMO 종자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면화 농업은 사실상 몰락했다. 


종자를 수집하라!


미국 정부는 일찌감치 종자의 가치를 깨닫고 종자에 투자했다. 세계 각지의 식물종을 수집해 농민에게 보급하고 자국의 환경에 맞게 토착화시켰다. 1980년대에만 해도 미국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 우리나라 전역에서 토종 콩을 유출한 후, 이를 미 농무부 산하 대두 유전자원 센터에 보관하고 있다. 약 2만여 종의 콩 종자를 보관하는 이 센터에서는 무려 4천여 점의 한국 토종 콩을 보존하고 있다. 


Ⓒ KBS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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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유전자원은 미국 대두 산업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다. 다국적 종자기업의 GMO 종자들 또한 이렇게 수집한 세계의 토종종자를 활용한 것이다. 현재 몬산토는 세계 종자 시장의 25%를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 재배 GMO의 87%가 몬산토의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한 종자로 재배되고 있다.


농약과 짝을 이룬 종자


GMO 종자의 특징 중 하나는 종자와 제초제 등 농약이 짝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점은 다국적 종자회사의 과거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몬산토는 식품첨가물을 시작으로 화학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세계대전 당시에는 신경가스를 생산했고, 베트남전 때는 고엽제를 개발했다. 전쟁 이후 화학무기 기술을 기반으로 제초제를 개발했다. 화학무기가 농약으로 변신한 것이다. 

또한 세계 각국의 종자기업을 꾸준하게 인수하면서 유전자 조작기술과 농화학 기술을 모두 갖춘 종자기업으로 거듭났다. 1995년 출시된 ‘라운드업 레디’라는 GMO 콩 종자는 자사의 ‘라운드업’이라는 제초제와 세트로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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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기업의 종자를 선택하는 순간, 종속된다


다국적 종자기업의 포대에는 종자회사의 특허 권리와 금지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종자는 단 1회 파종할 수 있으며, 재파종을 금지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자회사의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게 된다. 

농민은 수천 년 동안 종자를 개량하고, 손에서 손으로 전해왔다. 종자는 농민들의 노하우와 노력이 응축된 결실이며,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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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국적 종자기업은 이러한 종자에 특허를 취득해 종자기업의 소유로 만들었다. 생명공학 분야에 특허를 인정한 첫 사례가 1985년 하이버드 판례라고 한다. 하이버드 판례 이후, 종자를 지켜 온 농민의 권리는 무시되었고, 그 자리에 종자기업의 ‘특허’가 들어섰다. 그리고 30여 년 만에 상황은 급변해 농민들은 매년 종자기업의 씨앗을 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종자에 대한 통제권 강화


캐나다의 유채(카놀라) 농부 슈마이저 씨의 사례를 통해 종자기업의 이익이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슈마이저 씨는 50년 동안 유채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단 한 번도 다국적 종자기업으로부터 종자를 사지 않았다. 꾸준하게 자신의 수확물에서 씨를 받아 다음 해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지어왔다. 그렇지만 인근의 유전자 조작 유채가 바람에 날려 그의 밭에서 자라났다. 몬산토는 ‘무단으로 종자를 사용했다’며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종자 폐기와 그해 수익을 몬산토에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결국, 그는 평생 지켜 온 씨앗을 모두 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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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과정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종자 지배


종자 회사들은 카길 등 다국적 곡물 유통회사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종자 지배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고 있다. 곡물기업이 특정 종자만을 납품받으면서, 농민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종자 독점의 결과 북미 평원에서 자라는 곡물들은 2~3개 회사의 특정 종자로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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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단순화가 부를 재앙


그러나 이러한 종자 독점은 식량 생산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작물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종이 단순화될 때 겪는 재앙은 이미 여러 차례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1958년 토종 콩 장단백목과 일본 콩 육우3호를 교잡해 광교라는 품종의 콩을 개발했다. 생산량이 많았던 광교 콩은 순식간에 토종 콩을 몰아내고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나 보급 3년 만에 괴저바이러스가 퍼져 전국의 모든 콩 농사가 괴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괴저 바이러스에 강한 토종 콩이 사라지고 광교만 남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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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은 종 다양성이 파괴되었을 때 어떤 대재앙을 겪는지를 확인시켜준 대표적 사례다. 남미에서 수입한 단 1개 종의 감자만 재배한 아일앤드에 감자잎마름병이 유행해 감자가 초토화되었다. 감자가 주식이었던 아일랜드는 100만 명이 굶어 죽는 끔찍한 대재앙을 겪어야 했다.


우리 현실도 토종종자가 사라지고 식물종이 단순화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주요 작물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콩의 원산지였던 한국에서 9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이러한 수입 곡물은 축산물의 사료나, 가공식품의 원부재료로 국민의 식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토종종자를 지켜야 한다


한편, 인도는 토종종자 보존센터 ‘나브다나’를 통해 2000종의 토종 벼 종자를 비롯해 각종 토종 식물 자원의 종자를 보존하고 있다. 농민들에게 토종종자를 나누어 주며 농사를 짓게 한다. 토종종자로 거둔 수확물은 나브다나에 되갚거나, 다른 농민들과 나눈다. 이렇게 모인 토종종자가 인도 농촌에 다시 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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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종자는 오랜 기간 농민들이 생명력이 강한 씨앗을 선별해 우리 기후와 풍토에 맞게 토착화한 종자다. 그런 만큼 기후, 병해, 충해를 잘 견딜 수 있다. 그리고 다국적 종자회사로부터 종속을 끊어내고, 농민의 농사지을 권리와 소비자의 식품 선택의 권리를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농업을 지키는 첫걸음은 바로 종자에 있다.

 

늦지 않았다
 

고령의 여성농민들은 지금까지도 토종종자를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농민들이 토종종자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확산시키는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토종종자 지키기’ 사업이 그것이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토종종자를 지키는 일에 함께해야 한다.